82세의 차이콥스키 거장, 차이콥스키의 모든 걸 "허물다"



세계적인 지휘자 페도세예프와 러시아 최고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지난 21일 오후 8시 용인포은아트홀에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을 선뵀다.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단체다. 부족한 감상평을 띄운다.  <편집자주>

▲ 이 진절머리나는 자연스러움. 40년 차이콥스키의 끈을 놓지 않는 페도세예프여. 그는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견고한 예리함이 심장을 찔렀다. 아니 무너졌다.

"꾸밀 수도 없는 그 무엇, 아니 형언한다는 게 위선처럼 느껴졌다."
외면에서 느껴지는 그는 거장의 '풍모'보다는 러시아 농촌에서 볼 수 있던 '촌로'의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눈빛만은 거부할 수 없었다.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페도세예프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한여인을 품은 듯했다. 넘실대듯 그는 자신이 고대했던 사랑스런 연인과 춤의 향연을 시작했다.

남성의 비율이 많은 – 40~50대의 연주자들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노인처럼 보였다 – 페도세예프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은 남성적인 힘과 에너지로 넘칠 줄 알았다.

비교적 '임팩트'가 느껴지는 차이콥스키 4번은 개성 강한 곡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기대했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곤 안도했다. “핏속까지 슬라브, 그들이 정답이다. 이제껏 수없이 들었던 4번은 한국인의 4번이다. 페도세예프의 차이콥스키는 부드러운 일렁임이었다. 작위도 당위도 아닌 그대로의 모습이다.”

▲ 다르다. 아니 “이건 아니다”고 내뱉고 있었다. (스스로 혹은 ...) 잘 못 해석하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했다. 진실은 그 너머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차이콥스키의 뼈 속에 '페도세예프'가 숨 쉰다.

"잘 못 해석하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했다. 진실은 그 너머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관악의 승리였다. 불을 뿜는 트럼펫과 트럼본이 1악장을 끌고나갔다. 평온이었다. 고조된 평화였다. 암묵의 행진이었다.

이 진절머리나는 자연스러운 평온의 경이여. 40년 차이콥스키의 끈을 놓지 않는 페도세예프여. 그는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견고한 예리함이 심장을 찔렀다. 아니 무너졌다.

애달퍼서 슬픈 서막을 연 2악장. 늘 그렇듯 시작 됐다. 가장 슬라브적이다. 어느새 눈 내린 시베리아로 떠나는 얼음장 같은 형벌을 마주한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모든게 원점이었다"
“차라리 말을 해버려.” “차라리 울어버려” 차라리 소리쳐버려.“ 결국 차이콥스키는 2악장에 서 있다. 4번 2악장은 차이콥스키 그 자체다. 온전한 자체다.

(다만, ) 다르다. 아니 “이건 아니다”고 내뱉고 있었다.  (스스로 혹은 ...)  잘 못 해석하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했다. 진실은 그 너머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차이콥스키의 뼈 속에 '페도세예프'가 숨 쉰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모든게 원점이었다. 3악장, 4악장은 더 이상 의미를 잃었다. 내가 쓸 수사는 가치를 잃었다. 차이콥스키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꾸밀 수도 아니 형언한다는 게 위선처럼 느껴졌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지휘)
193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그네신 국립음악원,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1971년 므라빈스키의 초청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객원지휘자로 데뷔하였다. 1974년 42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수석 지휘자로 취임, 40년이 흐른 현재까지 악단을 이끌며 세계 곳곳에서 감동의 무대를 펼치고 있는 그는, 스탈린시대 공포정치와 세계대전, 냉전의 칼바람, 개혁의 혼란을 모두 겪으면서도 서방 행(行)을 택하지 않고 끝내 러시아를 지킨 최후의 거장이다. 쇼스타코비치, 스비리도프 등 현대 러시아 작곡가들과 교류하였으며 차이콥스키, 무소르그스키, 글린카, 보로딘 등 러시아 민족 작곡가의 해석에 특히 뛰어나다. 그는 정통 러시아 사운드로 큰 인기를 누리며 수많은 음반을 남겼는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전곡(6곡)을 4차례나 녹음했고, 러시아 지휘자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음반을 남겼으며, 브람스 전곡 녹음 및 말러 시리즈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소화한다. 또한 빈 심포니 수석지휘자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취리히 오페라 종신 객원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으로, 1930년 소련 국영방송 산하 관현악단으로 창단되어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으로 불려왔다. 구소련 해체 후 현재 정식 명칭은 ‘모스크바 방송 차이코스프스키 교향악단’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열정적 활동으로 인해 1993년 러시아 정부와 차이콥스키 협회로부터 정식 명칭을 수여 받았다. 러시아의 대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품의 초연과 더불어 림스키 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 독보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 교향악단 최초로 취리히 쇼스타코비치 음악축제, 에딘버러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70주년 기념행사 등 유럽 주요 음악축제에 참가했다. 단원들은 2-30년 이상 페도세예프와 호흡을 맞춰 온 연주자들로 그 일사불란함과 해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러시아의 본래적 색채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악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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