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의 확립은 중대한 사회적 과제이다

연말에 있을 성탄절 특사를 앞두고 이건희 전 삼성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김진선 강원도지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를 주장한데 이어 7일 대한체육회 회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선 이건희 IOC 위원의 역할이 필요하며, IOC 고위층에서는 사면을 그 동안 국제스포츠 발전에 공로가 많은 이 위원이 꼭 사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부 정․재계 인사들의 몰지각한 언행을 강력히 규탄하며, 동계올림픽 유치를 빙자한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사면 여론 조장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8월 경영권 불법승계를 위한 배임 및 조세포탈죄가 확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중범죄인이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수조원대의 차명계좌 운용 등 온갖 탈법, 불법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으며, 이는 특별검사의 수사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집행유예라는 일반인과는 다른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사회가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도 형 확정 후 100일이 지나지 않아 사면요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 정․재계 인사들의 도덕성과 준법의식의 결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박용성 회장의 경우 지난 2006년 두산그룹 비자금 조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 IOC 위원 자격을 정지당했으나 2007년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 복귀한 전력이 있다. 이러한 인사가 스스로 경영은퇴와 IOC 활동 중지를 밝힌 이 전회장의 사면과 IOC 위원 활동복귀를 앞장서 요구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태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고 하나 이는 오히려 올림픽 정신을 희화화시킬 뿐이다.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서 정정당당한 룰을 앞세워 경기를 펼치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탈법과 불법을 통해 경쟁의 룰을 어긴 인사를 특별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IOC 위원의 지위에 걸맞은 언행인지 반성하고 자중해야 할 것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물론 중요한 국가대사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이를 뛰어넘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이다.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죄 값을 치루지 않는 사회에서 어느 국민이 열심히 일할 것이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는가. 자신의 죄는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소수 재벌총수에 대한 무한한 특혜만을 주장하는 IOC 위원을 어떻게 우리나라 스포츠를 대변하는 인사로 볼 수 있겠는가. 특히 단순 교통법규 위반만으로 운전면허 정지를 당해 생계위협 상황에 내몰리는 영세 서민들은 이건희 사면론을 접하고 과연 이 나라가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는 나라로 인식하겠는가.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일부 정․재계 인사들의 잇단 이 전회장 사면 요구는 우리나라가 특정 재벌에 휘둘리지 않는 민주적인 법치국가인지를 판가름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될 것이다.

경실련은 이 전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용납될 수 없으며, 이 전회장 사면 여론 조장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만약 일부 몰지각한 정ㆍ재계 인사들의 비이성적 주장을 활용하여 정부가 사면에 나선다면, 이는 정부가 직접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심각한 국민적 비난과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시민단체 '경실련'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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