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는 예고된 스타였다. 비쳐졌던 건 혜성과 같았지만 그의 초기 음악은 사회비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를 B마이너로 취급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미국의 3류 음악을 세계화시킨 공로는 분명 싸이에게 있다할 때 오늘날 본토 미국의 백인 주류와 흑인들이 보이는 열광은 우연이 아니다.

10년 전 그의 음악은 증오와 풍자로 도배됐다. 육두문자와 함께 불경스런 생식기의 한국식 표현이 그의 음악에 자주 등장했다.
 
필자가 그의 음악을 접한 10년 전 상황. 이건 아니다 싶었다.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절. 듣기 민망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사롭지 않은 부분은 사회의 현실과 세태에 대한 통렬한 풍자에 가끔씩 몰래 들춰보는 도색잡지를 보는 스릴과 쾌감이 있었다.
 
일종의 배설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리만족하는 '임금님 귀 당나귀 식'의 쾌감이 그의 음악에 내재 돼 있다. 그게 대중음악이다.
 
다소 시간이 흐른 후 싸이가 유명세를 타게 된 '새' '챔피언'이란 노래가 나온다. 강렬한 비트에 눈이 뜨고 귀에 띄는 가사는 분명 초기 음악의 연상선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가사가 좀 대 대중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9금 이하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직설적인 가사의 적나라함도 이같은 생각을 뒷바침한다.
 
싸이는 품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중의 '껌'임을 자처하고 있다. 대중음악은 철저히 시대의 오늘을 담아야 한다는 상업적 음악관의 정석을 밟고 있다.
 
지난해 초 모 신문사의 편집회의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끄는 엔터테이먼트 회사에 대한 거론이 있었다.
 
S모사는 초기 현진영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아무개의 음악적 정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HOT'에서 '소녀시대' '샤이니'에 이르기까지 그의 보컬을 그대로 빼닮았다.
 
필자는 S사의 소멸을 얘기했다. 이 자리에서 싸이가 거론됐다. 과연 싸이를 사간 Y사는 어떤가. Y사는 개성을 존중한다. 그 개성에 양아무개와 싸이의 결합이 있었다.
 
엔터테이먼트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신기라도 발휘된 것인지 예상은 적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국내를 넘어 유튜브를 중심으로 세계적 히트곡이 됐다.
 
필자는 여기서 양아무개를 주목한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부터 나이트를 중심으로 10대들에게 흑인의 음악이 퍼지면서 음악적 주류로 자리잡았을 때 그가 있었다.
 
이러한 토양에서 싸이는 사춘기를 보내고 음악적 주류에 선다. 혹자는 말한다. 이른바 반짝하다 사라지는 가수일 뿐이라고. 아니 우린 싸이를 탄생시키기 위해 20년을 노력했다.
 
음악적 영향력의 가장 큰 계기는 역시 서태지의 등장이다. 물론 필자는 음악평론가가 아니다. 사회적 흐름에 대한 소시민적 시각을 대변할 뿐이다.
 
현재 빌보드 차트에서 그의 신곡 '젠틀맨'은 40위권 대로 떨어지는 상황. 이에 반비례하며 유튜브 조회수는 상승세다.
 
빌보드가 미국의 자존심이라면 어메리칸 아이돌의 피날레를 장식한 싸이가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미국적 상업음악의 정점에서 그들의 박수를 받고 있음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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