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민주주의] 대북 압박 강조한 6월 한미 정상합의 연장에 불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제6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대북메시지는 '비핵·개방 3000'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6·15공동선언, 10·4선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치 않았다. 그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자발적으로 개방할 경우 남측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핵 폐기와 개방을 우선 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종래의 대북 강경 자세를 유지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이전 두 정부가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남북교류 협력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통해 추진했던 정책을 외면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결의 1874호를 미, 일 등과 공조해 적극 실행한다는 정책을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이 이날 제안한 남북간 재래식 무기 감축과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설치 등은 남북간 신뢰 구축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것은 남북 간에 찬바람이 쌩쌩 부는 상황에서 공수표로 끝날 수 밖에 없는 비현실적인 제의다. 마치 우물가에서 숭늉을 구하는 격이랄까? 이런 것을 알고도 제의했다면 이 또한 대북 공세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사진출처-청와대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이 대통령의 전향적인 대북 정책 발표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리는 상황이 국내외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따른 북미관계 변화 가능성이 국제적 관심사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현대 아산 직원이 100여 일 만에 서울로 돌아오면서 현대 그룹 현정은 회장이 방북해 며칠 동안 귀환을 연기하는 등 국민의 시선이 남북관계에 쏠려 있었다.

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후 쏟아진 시국선언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언론도 이런 상황 변수를 고려해 그럴싸한 예고 기사를 써서 기대치를 높여놓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국내외 희망적 시선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차가운 대북 관련 발언만을 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이산가족 상봉 문제, 북측의 토지임대료와 임금 인상 등의 요구로 기업인들이 동요하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와 작년 7월 남측의 관광객 피격사망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 등 눈앞의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치 않았다. 북측 노동신문이 지난 8일자 '동족 대결정책은 파산을 면치 못한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취해온 강경 입장과 차이를 보인 바 있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컸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이 밝힌 대북 공세적 합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한미 정상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강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시했다. 핵우산 제공은 6자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은 남북 간에 경제 및 정치 공동체의 로드맵을 제시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백지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나라 정상의 대북 공동대응 방향은 '대화'보다 '압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한미 두 정상이 대북공세를 강화하는 제반 조치에 합의한 것은 이 대통령의 대북전략인 ‘비핵. 개방3000’ 추진에 멍석을 깔아준 의미가 있다. 이번에 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의 내용은 그것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간 북 핵문제를 압박과 봉쇄로 풀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에 일본과 적극 협조해왔다. 오바마 대통령 정부는 최근 북한 유사시 미군을 북한에 미국 대통령 지시만으로 진주시킨다는 군사전략을 공개하고 중국과 이를 협의하려 시도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오바마는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핵 없는 지구촌’을 약속했지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이란 핵문제와 달리 압박과 봉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고승우 논설실장

 
 

이 같은 차별적 방식은 강대국의 입맛에 따라 대응전략을 달리하는 자의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의 공세적 대북 정책이 오바마의 대북 정책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 남북관계는 냉전시대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변해야 한다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남북관계의 냉각 상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외세의 비합리적 전략에 일임하는 것은 자칫 한반도를 위기에 몰아넣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산적한 남북문제를 외면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 방식에 추종하는 언급만을 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평화는 자주적 철학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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