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27 '시선'] '절반의 실패'로 끝난 복지

7월 10일 49재를 치루게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서거는 진정 비극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값비싼 댓가들이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노무현 시대에 대한 진솔한 재평가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서거 이후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매체와 경로를 통해 우린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인간' 노무현 ....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를 접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노무현 자신과 노무현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완벽히 분리되지 않는 존재이다. 노무현을 통해 이 시대의 집단적 가치를 실현해보길 원했던 '우리'가 팔짱을 끼고 냉정하게 노무현 '그'에 대한 평가만을 행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그'의 공(功)과 과(過)는 노무현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공과 과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노무현시대에 복지정책과 관련하여 '그'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유제를 남겼는가? 이 대해 좀 더 철저히 반성적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분배는 목적이고, 성장은 수단이다"(2002. 2.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경선 연설)
"진보의 핵심적 가치는 복지다"(2008. 1. 청와대 신년인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경선자와 노무현 대통령 신분에서 직접 행한 그의 육성에 의한 언급이다. 우린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꿰뚫은 그의 이런 인식에 동의하였고 열광하였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재임 5년간 복지부문에서 우리는 성공했던 것일까?

그 시기동안 복지에 대한 상대적 진전이 있었음을 우린 부정할 수없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 스스로 복지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각종 복지부문 청사진이 등장하였는가하면 새로운 정책들이 선보였으며, 결정적으로 복지예산의 엄연한 증가가 있었음을 가릴 수 없다. 예산측면에서만 보아도 DJ 정부 집권 첫해인 1998년 2조 8천억에 머물던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7조 8천억으로,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의해 편성된 2008년도는 14조억원에 이르게 되었다. 복지부만이 아닌 다른 부처에 산재한 이런저런 복지예산을 모두 취합하면 전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현재 28%에 이르게 됨으로써 오랫동안 경제개발예산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것을 역전시킨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도 객관적 사실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시대 복지정책을 한 문장으로 평가하라면 "복지담론 제기에는 성공했으나 국민의 승인을 받을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로 함축된다. 상대적 진전은 있었지만 시대가 요구한 수준만큼의 절대적 진전에는 실패했다는 말이다. 비록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부처 전체가 복지를 우선적 가치로 인정하며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하며 오랫동안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불식시키고 복지의 가치를 국민에게 인식시켜려 애쓴 흔적이 있지만, 끝내 국민은 그런 노력을 외면하였다.

노무현정부 스스로 양극화 해소를 담론으로 내세웠지만 끝내 이에 대한 시원한 답을 찾아주지 못했고, 스스로 제기한 양극화 해소 담론에 깔려 버리는 아이러니로 귀결되지 않았는가? 노무현 시대 내내 복지의 사각지대는 대규모로 잔존했었고, 생계형자살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의 의료, 주거, 노후, 아동양육, 교육 등에 주름살은 크게 펴지질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러한 부족한 성과의 총체적 결과가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보수진영에게 차기 정부의 열쇠를 쥐어주는 것이 됨으로써 국민으로부터의 승인에 실패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린 노무현시대의 복지정책에 대해 '성공적'이란 수사를 결코 쓸 수 없는 것이며 반절의 성공이란 표현조차도 너무 관대한 평가라 아니할 수 없다.

왜일까? 왜 우린 복지정책의 '대담한' 진행을 하지 못한 것일까? 왜 주춤거린 것일까? 이명박정부가 대운하사업이나 4대강 살리기에서 보여주는 그 대담한 행보와 비교해보면 노무현정부 5년간의 복지에 대한 행보는 결코 대담하지도, 흡족스럽지도 않았기에 우리는 이에 대한 냉정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로부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성찰을 시도해 보자. 노무현정부 5년간 복지정책의 추진시기를 세분하여 보면 아래 표와 같이 나뉜다. 즉, 초기 1년반 동안은 복지에 대한 거의 아무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탄핵정국 이후인 2005년 후반이 되어서야 몇 개 영역에서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임기를 2년 남겨둔 후기에야 좀 더 다양한 정책시도가 집중되기 시작하였고 이때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라는 정책기조도 새로이 선보이게 된다. 물론 이 사회투자국가론이 서구의 제3의 길 정도의 이념적 기반였다는 점에서 과연 적절한 기조였는가라는 논란이 존재했었지만 어쨌든 서구의 선진적 복지담론을 정부 스스로 채택하고 공언했다는 점에서는 관대하게 평가해 줄 수도 있다.

<표> 노무현정부 5년간 복지정책 추진 상의 단계 구분


그렇지만 결국 복지정책에 있어 집권초기에 동력을 걸지 못하고 추진의 성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후기에 가서야 집중되었다는 점이 현상적으로 볼 때 가장 결정적인 대목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를 보여주는 결정판이 '비젼 2030'이라는 사회정책의 국가전략보고서의 발표라 할 것이다. 2006년 10월에 발표된 이 보고서는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복지지출비를 OECD 평균치인 22%대로 끌어 올린다는 정책목표 하에 다양한 정책추진사항을 집대성한 것이었는데, 이 보고서의 작성을 지휘한 정부부처는 오랫동안 경제성장지상주의의 산파였던 경제관료들의 집산지인 기획예산처였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 보고서는 참여정부가 '로드맵정부'라는 냉소적인 평가에 직면하는 이유가 되곤 했는데, 실제 1000조에 달하는 재정소요에 대해 참여정부는 어떤 책임있는 답변이나 구체적인 실행을 할 수 있는 입장도, 그럴 여지도 없었다는 점에서 보면 그러한 반응은 일정정도 타당하다.

이렇듯 일련의 아쉬운 흐름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음에 대해 그 원인을 찾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으니,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해 보고 싶다.

첫째는 진보개혁진영 자체가 아직 사회정책에 대한 철저한 대안 구성에 있어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노무현정부가 출범하여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경제와 복지의 동반성장', '경제정책의 사회정책화'라는 담론이 적극 제시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청사진이 당장 준비되어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오바마정부를 탄생시킨 진보적인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연구소(Centre for America Progress)의 존재를 떠올리면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바로 이 부분은 한국의 진보진영에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둘째는 관료들의 덫에 걸린 점이다. DJ정부 때도 그랬지만 노무현정부에 있어서도 관료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다. 특히 기획예산처 등에 포진한 골수 경제성장주의자들의 논리와 한계에 노무현정부 스스로 갇히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노무현정부에 참여한 모든 인사들의 반성지점이다. 이명박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바와 같이 관료는 활용의 대상이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깨달아야 했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부에 입각하여 외부의 진보진영이나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정부 관료들의 실용적 판단에 천착하여 스스로 '담대한' 정책추진의 가능성을 포기한 일부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이 점에 대해 뼈아픈 성찰과 고해가 있어야 한다. 관료들에 의해 적절히 추임새가 넣어진 자신의 논리에 심취하여 진보진영을 오히려 적대시하거나 경시하며 '단기필마(單旗匹馬)'의 신분이 되어버린 정치인 장관들의 독선적 행보는 두고두고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와서 누가 진정한 파트너였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지는 않을까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도 진보진영의 지나친 비판과 비협조가 노무현정부 실패에 대한 이유라는 진단을 서슴치 않는다면 진보진영의 연대는 물건너가는 것이라 보여진다.

셋째는 신자유주의의 덫에 스스로 함몰된 점이다. 북구형 복지국가의 이상을 한국복지국가의 이상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한국 복지제도의 공공적 기반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미쳐 정확히 인식하지 않은 채, 경제정책에서 성급히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신자유주의적 기치를 극대화하였고 이를 복지영역에까지도 적용하여 의료의 영리화, 국민연금의 개악, 바우쳐를 통한 공공전달체계의 왜곡 등을 서슴없이 진행한 것 역시 매우 뼈아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자성을 바탕으로 우린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복지국가의 수립을 통해 진보의 가치가 이 땅에 실현되고 민초들의 삶이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두 번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역사를 써 나가야 한다.

이번 노무현 재평가 작업을 거치면서 진보진영에선 서로간의 연대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연대가 공허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실현을 그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복지동맹'이란 차원의 연대가 절실하다. 이를 위한 정치세력과 지식인세력, 그리고 사회세력들 간의 구체적인 연대와 청사진의 공유만이 이 땅에 진보의 가치를 꽃피우는 길이 될 것이다.

진보의 가치인 복지의 구현. 이를 노무현시대의 유제(遺題)로 남기고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이를 미래의 절박한 과제(課題)로 삼아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이 글은 인터넷 참여연대(http://www.peoplepower21.org)에 게재된 글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 글은 7월 9일자 프레시안(www.pressia.com)에 실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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