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유연성 대신 급여 유연성 높여 기업-근로자 ‘윈윈’ 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유예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7월1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2007년 7월1일을 기점으로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해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게 된다. 이 법은 기업들의 비정규직 남용을 막고 고용 불안과 차별적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이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따른 논란은 간단치 않다.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여당이 법 시행 유예론으로 내세우는 논거이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는 법 시행 시점에 항상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에서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과 열악한 처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과 진보야당들이 유예 불가론을 주장하는 논거이다.

고용 유연성 대신 급여 유연성 높여 기업-근로자 ‘윈윈’을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 차원에서 고용의 유연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정규직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인력 구조조정의 용이성을 높여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용의 유연성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에 포함시켜온 터이다. 이러한 저간의 배경을 감안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비정규직을 앞세워 법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부 여당의 의중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기보다는 고용 유연성을 높여주기 위해 비정규직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노동계나 민주당 및 진보야당이 정부 여당의 유예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 이유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큰 틀에서 보면 비정규직 문제는 이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기업·정규직·사회)가 일정한 양보를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할 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기업은 인건비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후진적 경영 패러다임 대신 열정과 헌신으로 무장된 직원이야말로 경쟁력의 핵심 원천이라는 선진적 경영 패러다임을 채택함으로써 선제적으로 직원에게 고용 안정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근로자와 함께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이길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정규직 근로자도 기업이 급여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을 늘려 경기 변동에 대처하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은 고용의 유연성 대신 급여의 유연성을 높임으로써 기업 성과가 좋지 않을 때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사회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새로운 고용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때까지 일정한 부담을 져야 한다. 우선 법 시행에 따른 피해자들에게 실업 급여와 같은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소득을 보전해주고, 이미 확보된 정규직 전환 지원금의 조속한 집행과 추가 확충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사회적 책임에 철저해야 할 공공 기관들은 앞 다투어 법 적용 대상자들을 해고하는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국민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관련 법 시행을 주도해야 할 노동부가 공공 기관의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를 부추기는 듯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이며, 이는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법치주의에도 반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법 적용 대상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이 글은 시민단체 '경실련'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 글은 2009년 7월 8일 시사저녈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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