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 톺아읽기] 대량해고 걱정하는 '악어의 눈물', 정규직 전환과 구조조정 이뤄져야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먹이가 불쌍해서 우는 건 아니고 침샘과 눈물샘이 신경이 연결돼 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흔히 악어의 눈물을 위선자의 거짓 눈물에 비유하곤 한다. 다음 달 1일이면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 2년을 맞는다. 비정규직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 비정규직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언론의 다급한 외침을 지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슬픔도 동정도 느껴지지 않는 전형적인 악어의 눈물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2년 이상 비정규직을 고용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보다는 해고를 선택할 것이라는 게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애초에 비정규직 사유 제한을 하지 않고 2년 동안 마음껏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하면서 예견된 문제였는데 이들은 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냥 이대로 2년만 더 가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동아일보는 8일 사설에서 "여야, 3주 뒤 비정규직 해고 태풍 닥쳐도 좋은가"라며 호통을 치고 있다. 이 신문은 "고용
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이 70만명으로 추산된다"면서 "경기 침체기에 비정규직 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하면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 신문은 그 대안으로 "대량 해고사태를 피하면서 법 개정을 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일단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려놓고 추후 논의하는 방안이 차선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대한상공회의소 설문 자료를 인용, "응답기업의 55.3%가 사용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전원 또는 절반 이상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고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 신문은 "노동현장 여건을 무시하고 만든 법을 지금이라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최선"이라면서 "정규직 전환 주장만 계속하는 야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야당 사람들이 기업 경영자라도 그런 소리를 하겠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6월8일 3면. 
 
서울경제도 사설에서 "기간연장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실업대란이라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한다"면서 "우선 기간연장이든 현행규정 적용을 유예하든 방향부터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70만명 가운데 30%만 실업자로 전락한다고 해도 전체 실업자 수가 95만명에서 115만명으로 증가한다"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아무런 대책없이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신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많다. 먼저, 70만명이 모두 해고돼서 실업자로 나앉는다는 건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최악의 경우 일시적으로 해고 뒤 다시 고용되거나 다른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들 신문은 이 법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늘어나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숙련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대체하기보다는 계속 고용해야 할 유인이 있다는 이야기다.

  
 ▲ 문화일보 6월5일 사설. 
 
  
 ▲ 동아일보 6월8일 사설. 
 
  
 ▲ 세계일보 6월8일 사설. 
 
  
 ▲ 서울경제 6월8일 사설. 
 
실제로 주요 은행과 대형마트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경제의 지적처럼 단순 생산직이 대부분인 중소기업들은 해고를 선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규직 전환 의무를 풀어주고 유예기간을 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보수·경제지들은 해고될 것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으로 계속 살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밖의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연합뉴스가 5일 특별 취재팀까지 가동해 가면서 "비정규직 대란"과 관련, 다양한 논점을 담아 기획기사로 풀어낸 것도 주목된다. 연합뉴스는 "양쪽의 시각차가 워낙 크다보니 결국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해법이 수렴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면서 "지금보다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동시에 정규직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처방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가 내린 결론은 그나마 현실적인 해법이지만 전형적인 양시양비론이기도 하다. 일단 비정규직 보호법의 취지에 맞게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2년을 채우지 못하도록 1개월 앞두고 부당하게 해고하는 기업들을 단속해야 할 의무도 있다. 이들 기업들에게는 필요하다면 불이익을 주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 한국경제 6월8일 3면. 
 

잘못 꿴 단추를 지금이라도 바로잡는다면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좀 더 본질적인 해법이다. 출산 휴가나 질병 요양 등으로 한시적인 고용이 필요하거나 단기 또는 임시 업무 등에 한정해 예외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하되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더 적은 임금을 줄 수 있고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연합뉴스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대가로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할 것을 거래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이는 자칫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정규직을 해고하기가 힘들다보니 경영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따라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를 단순히 기업의 이윤 추구의 도구로 보는 수준 낮은 현실 인식이다. 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언론의 지면에서 이처럼 객관을 가장한 비겁한 양시양비론이 발견된다.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세계적인 금융 불안, 그리고 경기침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내수가 부실한 경제는 외풍에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내몰았다. 덕분에 기업의 이윤도 늘어났고 주가도 뛰어올랐지만 성장의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비정규직을 더 늘리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는 기업들은 도태돼도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과감하게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이고 도태된 기업의 노동자들은 정부가 끌어안아서 실업
급여를 주고 적극적인 고용 대책을 내놓아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임금을 깎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런 기업들이 대상이 돼야 한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지금 못 내리면 2년 뒤에도 못 내린다. 노동자들을 대체 가능한 도구가 아니라 경영의 동반자로 생각해야 한다. 제대로 된 임금을 주고 이에 맞춰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내수기반이 뿌리를 내리고 그래야 성장동력이 확충이 된다. 어설픈 양시양비론이 아니라 기업에게 쓴 소리를 하는 언론이 필요할 때다. 어설픈 비즈니스 프렌들리 논리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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