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될 때마다 일희일비…CEO들 설문해서 "노사관계 최악" 공격

20일 문화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한국 '노사 생산성' 만년 꼴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가 이날 발표한 세계 경쟁력 평가 결과를 인용한 기사다. 
 
IM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조사대상 57개국 가운데 27위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31위였다. 문화일보는 특히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생산성이 56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노동부문이 한국의 국가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 5월20일 문화일보 3면. 
 

이 신문은 3면 "노사 상쟁 국가 경쟁력 다 갉아먹는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지금까지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던 노사관계가 여전히 꼴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경제계 안팎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만년 세계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경우 선진국 진입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IMD는 해마다 국가 경쟁력 지수를 발표하는데 이 지수는 국제통계설문조사로 구성된다. 국제통계는 57개국을 대사으로 국제기구와 지역 또는 민간기구, 각국 정부로부터 수집한 140개 기준 데이터로 전체 지수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설문조사는 106개 문항으로 해마다 2월 말에 4160명의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데 지수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문화일보가 거론한 노사관계 생산성 항목 역시 설문조사로 평가되는데 노사관계가 생산적이라고 생각할 경우 6점, 그렇지 않을 경우 1점을 주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그 이상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상당수 신문들이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지난해보다 4계단 올라섰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내보냈는데 사실 순위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마다 신뢰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기도 했지만 언론은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면서 꿈보다 좋은 해몽을 쏟아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낸 "국가 경쟁력 지수의 허와 실"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들은 1년 동안 국가 경쟁력 지수와 관련, 보도기사 284건과 사설 34건을 포함, 무려 308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반면 CNN과 ABC,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전무했다. 영국의 BBC도 해마다 한차례씩 간단한 소개 기사를 썼을 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연구원은 "주요 응답자들인 기업 경영자들이 국가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그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자신이 영위하는 사업 여건 등을 감안해 답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특히 응답자 1인이 기업과 정부, 인프라 등 모든 설문에 응답하도록 돼 있고 응답 회수율도 12~17%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특히 IMD 국가 경쟁력 지수는 평가 항목이 기업 경쟁력 위주로 편중돼 있고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인 사회 후생이나 사회적 자본과 관련된 평가항목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설문 자료에 가중치를 0.5로 일괄 부여하고 있는데 이 역시 국가 간 제도나 정책 역량의 차이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김 연구원은 "순위 산정 등에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데도 수요자(국민)들이 이를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국가경쟁력은 중장기적 관점을 갖고 키워야 할 과제인ㅤㄷㅔㄷ 한두해의 순위 변동에 따라 국가 경제 전반의 침체나 도약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대 교수도 "국가는 기업과 달리 단순히 지표 하나로 핵심 내용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력 개념은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2007년 7위에 올랐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아예 순위에서 빠져 있는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엠바고(보도유예 요청)까지 걸어가면서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석간부터 시작해서 언론은 앞다퉈 기사를 쏟아냈다. 연합뉴스는 시론에서 "노사관계를 비롯해 매년 취약 요인으로 평가 받는 분야도 적지 않아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기업 효율성이 국가 등급 올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경쟁력 순위 상승을 견인한 것은 기업 효율성 부문이었다"면서 "지난해부터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각종 법 개정과 감세 등을 추진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 신문도 "강성 노조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도 사설에서 "목표인 15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죽창 시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노사관계가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전투적인 노사관계가 상생으로 전환되면 국가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설문조사 결과가 일방적으로 경영주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결국 기업인이 경영활동을 할 때 얼마나 덜 규제받는지가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되고 있어 전경련의 대외창구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는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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