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비정규직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하다

4월 17일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 종로 보신각 앞 인도. 흩어져 있던 비정규 투쟁사업장의 촛불이 종로에 모여 흥겨운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화려한 조명도 높은 무대도 없었다. 서투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들은 종로거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했다.


이곳에 모인 촛불 80여 개는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의 고립되고 힘든 투쟁을 상징하는 듯했다. 명지대 조교, 오페라 합창단, 기륭분회, 학습지 선생님, 송파구청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자리에 모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문화제를 각자 자기 최대 역량을 발휘하고 부족한 부분은 오페라 합창단이 메워줄 것이라는 겁 없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한다.

문화제 제목도 “우리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한다”다. 무대를 대신한 차량에 붙은 현수막엔 “모두에게 봄이 왔으나 비정규직-투쟁사업장에는 아직 겨울인 시점. 종로에서”라고 적혀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옷차림으로 북적이는 종로 거리에 붉은 조끼와 두터운 옷을 입은 이들이 이질적이다. 그래도 문화제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흥겨웠다.

해고된 명지대 조교들은 “우리가 맨 처음에 해서 다행”이라며 노래가 본업인 오페라 합창단의 흥겹고 활기찬 공연에 환호를 보낸다. 송파구청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재 씨는 부끄러움을 얼굴 가득 안고서 하모니카를 불었다. 눈을 감고 부는 하모니카에서 흘러나온 민중가요가 종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해고된 학습지 선생님들은 “천막을 지키느라 연습도 못했고 율동을 가르치기로 했던 강사님은 우리 앞에서 춤을 추던 학생동지들”이라며 “여럿이 하기로 했던 율동 대신 한솔교육 해고자 김진찬 동지가 독박을 쓰고 독창을 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김진찬 씨는 기타를 들고나와 잔잔하게 노래를 부른다.

봄이 왔어도 이날 저녁은 제법 쌀쌀했다. 스웨터에 조끼를 걸치고 나온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해마다 노동절 전날인 4.30 투쟁은 항상 추웠다”면서도 공연의 작지만 훈훈한 분위기를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  해고된 학습지 선생님들은 "여럿이 하기로 했던 율동 대신 한솔교육 해고자 김진찬 동지가 독박을 쓰고 독창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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