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상흑자 강조는 의도 불순

세계가 금융위기의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만이 순항 중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8%를 넘었지만, 한국의 실업률은 아직 4%가 채 안된다. 지난달부터 경상수지는 흑자를 보이고 있고, 3월에는 사상 최고의 월간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달이 보름도 지나지 않아 벌써 여러번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5%로 추정되고 있어,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2007년 2%, 2008년 1.3%로 훨씬 더 낮다.

이 통계들은 모두가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의 모습은 이 통계들과 맞지 않는다. 통계상 실업자는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한 사람만을 포함한다. 그런데 실업자에 대한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서구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정부기관에 구직활동을 신고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실업률은 따지지 않고 고용률만 따진다. 총 성인 인구에서 취업자의 비율을 따지는 고용률은 지난 2월 57%였는데, 고용률이 57.6%였던 1999년 6월 실업률은 6.7%에 달했다. 당시는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이고, 실업률 통계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구직활동기간을 1주에서 4주로 늘려 새로 통계를 잡기 시작한 첫 달이다. 현재 실업률이 최소 6%는 넘으며, 99년보다 실업자의 신고율이 더 낮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의 문제를 넘어선다. 만약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실업자의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실업자는 급증할 것이다. 그러면 얼마 뒤 한심한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실업급여를 증가시키면 실업률이 늘게 되니 실업급여를 줄이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유럽의 실업급여가 높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다고 주장해 왔다. 엉터리 실업률 통계를 폐기하지 않는 한 합리적인 실업자 지원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자꾸 경상수지 흑자를 거론하는 것은 그 의도가 매우 불순하다. 시장의 쏠림현상을 해소해 보려는 의도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일반 국민을 속여가면서까지 의미 없는 흑자를 거론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흑자가 나는 통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가 흑자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외환이 들어온다고 시장이 생각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로는 흑자액만큼 외환이 들어오지 않는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선박은 수주 후 인도될 때까지 2~3년이 소요되는데, 선박 인도시 전액이 수출로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계약과 동시 수주액의 대부분은 이미 선물환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액과 외환수입액 간에는 차이가 난다. 선박 수주가 꾸준할 때는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난해 말 이후 선박 수주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현재의 선박수출액은 허수에 불과하다. 현재의 수출 대금은 이미 대부분 뽑아 쓴 셈이다. 자꾸 이런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때 정부는 신뢰를 받지 못한다.

대통령 어떤 통계 보는지 궁금

GDP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교역조건까지 고려하여 국민소득개념에 더 가까운 2008년도 국내총소득 성장률은 이미 마이너스 2.1%를 기록하고 있다. 금년도는 더 나쁠 것이고, 실제로 가계의 소득을 의미하는 가처분소득은 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GDP의 55%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득분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많은 저소득 가계의 소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최고위층에게까지 보고되는지 확실치 않다. 지금 정책당국자들은 과연 어떤 통계를 보고 있을까?

* 이 글은 시민단체 '경실련'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저작권자 © 광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