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차 추모대회, 도심 곳곳 산발시위…색소 무차별 난사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2주가 훌쩍 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사인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들도 처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추모’만 할 수 없습니다.”

7일 오후에 열린 ‘용산철거민 희생자 3차 추모대회’에서 사회자의 첫 마디는 이곳에 모인 5,000여명의 시민들의 분노를 그대로 전하는 것 같았다. 또 이명박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참석자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7일 오후 열린  ‘용산철거민 희생자 3차 추모대회’에는 5,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용산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경찰은 이날 추모대회를 막기 위해, 청계광장과 주변 도로를 봉쇄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도 경찰은 집회 시작 전부터 청계광장과 주변 도로를 경찰버스 수십대로 가로막고 병력을 집중 배치시키며 추모대회를 원천 봉쇄했지만, 주최 측인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대책위는 오후 4시 20분 경 청계천 변 예금보험공사 앞으로 장소를 옮긴 뒤, 집회를 진행했다.  

'이명박 안된다' 운동 벌이자

‘떼죽음 외면하는 MB, 당신이 진정한 사이코패스.’

이날 추모대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고인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사이코패스(반사회적인 성격장애자)’에 비유하는 펼침막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날 추모사를 통해, ‘아니다 운동’과 ‘안 된다 운동’을 제안해,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경찰과 용역깡패 2,000여명이 철거민 5명을 공격해 죽였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려고 400명이 동원된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용산 참사’는 학살입니다. 이명박씨는 이런 경찰과 용역들을 감옥에 넣어야 하지만, 이들과 싸우고 있는 ‘양심’들만 감옥에 넣었습니다.

앞으로 ‘아니다 운동’을 일으킵시다. ‘이명박씨는 대통령도, 7천만 민중의 한 사람도 아니다’라는 운동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명박씨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안 된다 운동’을 일으킵시다. ‘이명박씨는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운동 말입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떼죽음 외면하는 MB, 당신이 진정한 사이코패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오늘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날 추모대회에 참석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대표해, 고 양회성 씨의 차남 종민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로 올라왔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참지 못했다. 마음을 다시 추스린 종민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자, 그가 발언하는 동안 경찰은 “정치발언이 계속되고 있다”며 강제해산 위협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유가족의 주제가가 된 투쟁가

“불에 탄 시신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처음 본 불에 탄 시신은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농성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와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는데…. 작은 행복마저 빼앗기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부른 투쟁가가 이제 우리 가족들의 ‘주제가’가 될지 몰랐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피해자인 철거민들을 ‘가해자’로 몰고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경찰과 검찰이 저희와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책임자들이 퇴진할 때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검찰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권영국 ‘용산철거민 참사 진상조사단’ 조사위원(변호사)은 “지금 검찰의 ‘용산 참사’ 수사를 지켜보면, 정권과 재벌의 봉사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검찰은 진상조사를 조작하고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경찰버스에 가로 막혀, 행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 (사진=손기영 기자)  

권 조사위원은 이어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격적인 진압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경찰특공대의 조기 투입”이라며 “검찰은 근본 원인은 조사하고 있지 않고 철거민들의 행동에 대해서만 집중 수사하면서, 공명정대한 수사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김태연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대책위’ 상황실장은 “만약 2월 9일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못한다면, ‘검찰 사망의 날’이 될 것이고 ‘정권의 명운이 다하는 날’이 될 것”이라며 “9일 촛불문화제를 비롯해, 오는 14일에도 ‘4차 범국민 추모대회’를 개최하며 맞서겠다”고 밝혔다.

14일, 4차 추모대회

이날 저녁 6시 추모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유가족을 선두로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은 청계천 모전교 주변을 경찰버스로 봉쇄하며 이들을 제지했다.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항의시위를 벌였다.

한편 1,000여명의 시민들은 행진방향을 바꿔, 무교동 골목을 따라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곳에도 전경 300여명이 집중 배치돼 길목을 가로 막았고, 시민들은 “경찰이 왜 인도를 막고 있나”며 항의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한 시민은 ‘사랑하는 국민의 아들 전경들아 살인마 김석기의 더러운 명령을 따르지 말고,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라’는 피켓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종로3가 'YBM 학원' 앞에서, 시민들이 색소분사기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한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난사한 파란색 색소가 인도에 흥건히 묻어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어 시민들은 경찰 제지를 피해, 인도를 따라 종로3가 방향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경찰은 저녁 7시 경 종로3가 ‘YBM 학원’ 앞에서 도로로 진입하려는 행진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을 지나던 시민, 취재진들에게도 파란색 색소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한 여자 어린이가 색소를 맞기도 했다.

곳곳서 산발시위

이후 행진 대열은 을지로 방향과 퇴계로 방향으로 나눠졌다. 200여명의 시민들은 경찰을 피해, “명박 퇴진, 독재타도”, “사이코패스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을지로4가, 국립의료원을 거쳐 동대문까지 행진을 벌였고, 퇴계로 일대서는 300여명의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다 6명이 연행됐다.

밤 8시가 넘어서면서, 이날 시내 일대에서 거리행진을 벌였던 시민들은 명동성당 들머리로 집결한 뒤, 자유발언을 이어갔으며 ‘정리 집회’를 진행했다. 밤 10시 경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진해산 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명동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날 추모대회에는 심상정, 이덕우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 이 기사는 본사와 진보언론 'Redian'과의 기사제휴에 따른 사항에 준해 게재하고 있으며 기사를 포함한 사진의 저작권은 'Redian'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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