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김병수의 제주도사나] 김석윤 선생님과의 대화는 여러모로 유익하다. 꼼꼼한 성격과 기억력이 뒷받침 되어야 겠지만, 젊은 날부터 제주 건축사에 대해 언젠가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지역을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겠나)

화북 공단이 들어서기 전 이미 교대와 오현고가 이전해 있었다. 그럼에도 제주항과 가까운 공단 입지 조건과 도로 개설 뿐 아니라, 공단 부지가 빌레와 잔돌이 많아 경작지(밭)로 좋지 않았던 이유도 개발이 용이했던 점이었겠다.

처음 공단 입주가 결정된 기업은 도심에 있던 연탄공장 두 곳이라 한다.

도시연대를 이끌던 고 강병기 선생님이 제주 화북 출신이란 것도 알게되었다.

 

동문시장은 60년대 초 당시 관선 지사가 은행을 동원해 개발한 후 조합을 만들어 민간에 이관했다고 한다. 전주 남부시장이 67년 대통령 하사금(예산을 그렇게 불렀다)으로 조성된 것에 조금 앞서서 개발되었다. 이른바 관선시대는 개발자금은 부족했지만 행정적 동원 시대에 가능한 순기능 또한 있었다.

선생님이 설계했던 공관(전두환 정권에서 도지사관사와 대통령공관을 한 부지에 설계)의 건축 과정은 곤혹스런 일 투성이었다 한다. 나중에 선생님이 글을 좀 남기시면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듯하다.

탑동개발이 이후 도심 개발과 건축에 미친 영향은 아직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개발여부, 개발주체와 개발이익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가 압도적인 탓도 있을 것이다.

 

지구단위 계획에 대한 이야길 나누다, 산지천 복원 이후 공원 조성 등이 꼼빼(설계경기)를 통해 실시 되었는데 좋은 기회를 더 잘 살리지 못한 아쉬움, 한 편 고씨주택의 복원과 산지갤러리가 조성된 경위 등에 대해서도 들었다.

권위주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말씀을 나눠 주셨다.

오늘은 젊은 현승훈 건축가가 동행했다.

 


* 글 • 사진 : 김병수 제주시청 문화도시센터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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