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IN이슈=지용진] 비다. 가을에 비 많은 상념을 준다. 이제 계절은 누가 뭐래서 그 본령에 접어들었다.

지나고 보면 젊고 좋았던 80년대는 지났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아날로그 정서가 좋았다. 그 시절이 좋은 시절이었음을 한참을 지나서 알게 됐으니 말이다.

벌써 2030년을 향해 간다. SF영화에서 UFO를 타고 다닐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연기관이 전기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기술은 그렇게 천천히 진화한다.

코로나 창궐의 시대에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인간은 결국 생물이라는 것이다. 나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몸에서 싸우고 이의 합병증으로 죽을 수 있다. 역병의 시대에 온전한 삶이 위태롭다.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의 희생의 끝이 보일라나. 이 같은 기대가 현실이 될 날로 머지않았다. '위드 코로나'가 조심스레 얘기되고 있다. 살아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있어 방역의 새 전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코로나 시대를 적응하고 있다. SNS를 통한 소통의 양이 대폭 늘고 비대면 사회를 놀랍도록 적응한다.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에서도 SNS를 통해 소통한다. 교수와 학생 간, 학생과 학생 간 서로 간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이제 SNS는 사회 전반에도 범용화 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생활 속에 이미 스며들었다.

이 시기의 양상은 제도적 비대면 사회로 가는 4차 산업 혁명의 폭발적 새 전기를 마련할 듯 보인다. 영상으로 대면하는 기술이 급증하고 있고 이는 생활로 정착돼 가고 있다.

문화예술 공연도 이젠 영상으로 본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공연 주체들이 영상 장비를 대거 도입하는 한편 적지 않은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영상화 공연들에 있어 아직은 인간미를 잃지 않고 있다 평한다. 다만 장기화될 경우가 우려 된다. 시기가 길어질수록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공연들의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면으로 진행되는 공연을 비대면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비대면의 물결이 우리를 훑고 있는 이즘 내일의 비전을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무어라 설명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앞으로 세대들에게 펼칠 청사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묘수는 사실 지금부터라도 궁리할 뿐이다.

전 지구적 문제인 지구 온난화도 당면한 현실이고 우리의 환경은 내일을 전망할 여유를 주지 못하고도 있다.

자각하고 조치해도 늦었다는 얘기고 보면 산적한 과제를 그냥 맞이하라고 하는 꼴이다. 제대로 된 상황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일 누군가의 몫이다란 개념으로는 불충분하다.

비가 내린다. 느는 건 스마트폰 타수다. 이런저런 생각의 답은 없다.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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