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IN이슈=지용진] 우리사회 양분하는 가치가 있다. 과연 지상에 이 둘의 가치만 존재할까. 우리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그 권리는 누려져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됨의 추구는 다양하게 발현되고 이는 곧 생활의 양식, 문화의 양식으로 우리를 구성한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성숙한 단계의 민주주의를 향한다. 이같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나 아닌 타자의 삶과 양식도 함께 할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풍토는 다원화 사회의 미덕이다. 이는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내일의 시선이 어느 한편에 편중되지 않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비전을 품게 한다.

80년대부터 진행됐고 90년대 말 완성됐던 우리사회 주류로 일컫는 범사회운동은 일정 부분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을 만들었다. 이같은 구세대 운동은 시대의 흐름 속에 퇴조하고 시민 속에 참여하는 이른바 신세대 운동인 시민운동도 30년을 맞는 시점이다. 시민운동을 감시하는 시민운동을 논하는 시대에 이르러 한국사회의 성숙한 문화 비전을 제시할 담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의 저변이 넓혀지고 있다.

저명한 소설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은 제 3지대를 선택한다. 소설 속에서는 한 개인이 갖는 신념의 확장에서 시대의 비극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그려졌지만 우리시대 광장의 지평은 이제 당연한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원화라는 어휘 자체도 편중된 시선이 보내는 극히 주관적 해석일 수 있다. 다원화 만능주의를 지양하면서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풍토는 민주주의의 척도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다.

이 지점에서 과연 우리사회를 나눠 양립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소위 정치적 주류의 가치가 진정한 의미의 우리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품어본다. 지지하는 정당의 이슈 어필에 따라 출렁이는 민심의 추이와 현상은 애초 양립된 가치의 본질과도 멀어져 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일컫듯 다분히 정치적 색깔론의 프레임에 갇혀 서로에게 끝없이 대치되며 비생산적 구태만 답습하고 있지 않냐는 문제 인식이다. 싸잡아 이같은 현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정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것이고 이 틀에서 생산적인 비전이 나올 수 있겠냐는 탄식이다. 또 이것을 주류적 현상으로 인정할 수 있냐는 문제다. 단순한 프레임에 씌운 현상이라 해석해 보고자 한다. 다만 이슈일 수는 있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해석하는 본질이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사회지도층도 반성해야 한다. 주류 정치에 줄을 대고 어떻게든 정치적 본류로 진출하고자 하는 폴리페서들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학자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에 있어 이들을 구분하는 매카니즘은 애초에 다르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명분의 도취에 발로든 개혁적 의지의 실현이든 좋으나 정치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프레임 속에서 이뤄지는 대립과 투쟁이란 구도에 익숙할수록 본연의 의지는 약화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우리정치를 변화하겠다는 의지는 더더욱 찾기 힘들다. 단 소망은 누구나 피력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사회 지도층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샌드위치로 브런치를 먹고 무거운 서류를 짊어지며 자전거로 의회를 출퇴근하는 유럽과 같은 이상적 정치는 둘째치고라도 자질과 책임 의식은 아직도 먼 영역이다.

이들은 당색에 따라 표리부동하다. 의회란 권좌에서 그 자리를 보존하고 다음 공천 때까지 안전한 경로를 선택한다. 당심과 멀어지지 않도록 이심전심하는 데 올바른 신념이나 이상을 표출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 인식에서 국민은 과연 이들에게 온전한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정치적 호불호가 갈리나 여기서 이 정부의 조국 사태에 관련한 일련의 조치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까지 다다른 상황에서 정부의 무대응과 무능력은 공분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신뢰는 한없이 추락하고 과잉된 권력이 남발됐다. 명분은 사라지고 권력은 욕망이란 열차를 타고 멈추지 않고 달렸다. 멈춰야 할 시점이 지났을 때 국민은 이미 신뢰를 거뒀다.

권력이 과몰입하고 본질을 망각했을 때 국민은 심판한다. 정치적 피해망상을 국민에게 각인하고자 하는 권력의 과잉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일련의 사태 속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의 침탈이다. 국민 간 비생산적 논쟁을 제공하고 살벌한 대립을 양산했다는 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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