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김병수의 제주도사나] 오후로 들어서며 다시 눈발이 날린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바다에서 불어 오는 가,

피로한 상태로 며칠이 지났다.

문화도시 지정 탈락 후, 내가 어떤 표현을 하든 한물 간 사람으로 보여질까 망설임이 없는 건 아니다.

또, 책임을 진 ‘개인’의 술회가, 함께 해온 분들의 수고에 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은 그저 지금의 내 심사 정도로 이해 되길 바란다.

 

문화도시 선정 발표 후 든 생각

첫번째, ‘너무 사회적’이라거나, ‘문화가 적다’, ‘어떤 이념적인 느낌이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

‘아니 에르노’의 비유가 떠 올랐다. 접시를 닦는 대신 깨는 행위는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게되지만 ‘그럼 해결책은 뭔가요?”라는 질문이 될 수 있다.

문화는 문제를 환기시킬 때의 장면을 중시한다.

문화도시의 역할(활동)은 김소연이 ‘시옷의 세계’에서 말한 상상력의 문제로 생각해 볼수있다.

김소연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공간들, 그 경계의 영역들’로 상상력을 설명한다. ‘그 영역’은, 미지 세계와 현실과의 경계에서 발휘 되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활동이다.

나는 지금, 나에게 말했던 ‘그들’과 다르다, 고 말한다.

그들도 ‘문화와 사회’라는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적이며, 사회적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떤가.

문화적 방식으로 제주의 환경 문제, 오버투어리즘, 공동화 현상, 소외와 갈등을 다루는 것의 끝을 생각해 보라.

그걸 다 해낸다는 게 아니다. 제한적이나마 자유롭게 추구되는 실체가 존재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념적인 느낌’에서 말하는 ‘이념’이란, 낡고 편벅한 편견만 있는게 아니다.

문화는 자유롭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해 주류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하나의 스타일을 형성해 간다. 사회를 개인의 삶에 가깝게 만들고, 개개인의 상상력이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이념이다.

두번째, 경쟁의 ‘사소함’에 대해.

‘존재란 목마르지 않아도 마시는 것’이란 말이 있다. 우린 문화도시를 하라고 독려 받는 입장이 아니다.

각각의 도시가 선택 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자원을 배분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이 있다.

문화도시 심사 과정이란, 복잡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에 바빴다. 변별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하는 척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건 그럴 수 있다. 행정 행위 자체가 갖는 묵시적 강요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사 당사자 간 토론과 치열함 속에서 합의된 권위를 갖게 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심사자들 사이의 모순된 질문과 주장에서 의구심은 확인 되었다. 그럼에도 여러 변수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이고, 우리가 되었다고 해도 이 상태가 변할 건 없다.

심사과정에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소란을 피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 권하고 싶어서다.

 

세번째, 다음 과정을 생각한다.

도시기획자는 도시정체성에 대해 늘 생각한다. 파리나 뉴욕에 여행 가기전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도시는 삶이 농축된 ‘텍스트’다. 때로 역사적이고, 더 많게는 날것의 현실 속에서 영감을 떠올려 도시의 모습을 더듬어 간다.

도시기획이란 죽을 때까지 완성된 텍스트가 없는 일이다. 외려 해 왔던 일이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나의 부재 보다, 해온 일들의 사라짐이 더 아픈 경험이 있다. 내가 ‘해내야 할 몫’이라 다짐해 온 열정 조차, 가차 없이 사라질 수 있는게 세상 이치다. 이를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다.

나는 지금 현실의 기준과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했나, 나를 싫어 하는 건 아닌가, ‘그들’이라고 할 만큼의 벽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 정책에 내가 조응될 가능성이 없는 걸까... 궁벽한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제주시는 몇 년 간 정책에 따라 투자해 왔고, 나는 그 미션을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간 문화도시 추진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생각할 기회를 얻어 왔다.

여럿이 실천 현장에서 마음껏 일 하기 위해 늘 동분서주해 왔고, 운 좋게도 사람들에 끌리고 함께 해온 날들이 소중하게 남았다.

그러나 좀 더 상쾌하게, 즐기며 할 수 없었나, 도시적 비전을 가늠하는 시선이 나의 조바심으로 나타나 누를 끼친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반 반성도 든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다음 과정에 대해 기다림이 필요하겠지만, 제주에 대한 내 사랑은 유별난 것이라는 이 느낌만은 감사한 일이다. (2021.1.9)

 

* 글 • 사진 : 김병수 제주시청 문화도시센터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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