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IN이슈=지용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소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 일까. SNS의 파급력은 실로 우리시대의 근간을 지배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불과 10여년 전에 출현했지만 이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깊게 파고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과 단체를 불문하고 저마다 ‘톡방’을 개설해 매일 시간을 떠나 소통한다.

이는 일상의 업무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 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업무 사항 등을 소통하고 관련한 파일을 주고받기도 한다. 학원도 비슷하다. 개설된 과목에 따른 톡방을 개설해 여러 사항들을 나누고 교류한다.

페이스북이 중장년층의 소통 창구라면 인스타그램 등은 젊은 층이 애용하는 SNS다.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논하는 페이스북이 젊은층에 외면 받는 이유는 페이스북이 지나치게 정쟁의 장이 되고 있음이다.

가볍고 유쾌한 주제를 그때그때 사진으로 올려 호응을 받는 인스타그램이 젊은층에겐 매력이 아닐 수 없다.

SNS을 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구애 받지 않고 서로의 의사를 나누는 기능이 가장 근접하다. 이즘 이같은 SNS가 과연 우리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소통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우린 생각해 볼 수 있다. 페이스북류는 자기주장이 강한 데 소극적 의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칫 소외될 수 있다.

이는 톡방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과 엿보는 사람들의 심리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SNS는 단지 수단일 뿐이고 의사소통의 주된 주체라 할 수 없는 이유다. 사회가 급작스럽게 비대면 사회로 가면서 SNS를 통해 소통하는 횟수가 늘었지만 우리는 대면하며 나누는 진지한 대화가 그립다.

문자는 하나의 기호다. 그 기호는 의미를 지닌다. 또 표현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얼굴과 표정 그리고 몸짓과 음성으로 소통하는 휴머니티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이렇다 보니 오해 아닌 오해도 생기기도 한다.

시간과 때의 장소와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한계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SNS는 보다 더 각광받고 있다. 또 이에 따른 부담도 늘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것 같다.

우리가 SNS에 따른 일상 속 대화 중에서도 짐짓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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