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트라=광교신문][경기IN이슈=지용진] 지난 1984년 개봉된 영화 ‘아마데우스’는 악성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35세 짧은 생애를 살리에리란 인물이 화자가 돼 전개되는 영화다.

모차르트는 일찍부터 보인 천재성으로 비엔나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질투를 받게 되면서 – 결정적으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볼 수는 없다 – 영화는 시작된다.

매사에 자유로운 그였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정열을 불태우고 비엔나 최고의 작곡가로 떠오르며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된다.

권위로 무장된 비엔나 지도층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되지만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차르트는 앞서간 음악인이었고 천재였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에피소드 형식을 빌려 모차르트가 이 영화에 비쳐졌지만 그의 35년 삶은 음악을 향한 전진이었고 그의 사후 베토벤 등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영화 속에서 간간히 드러나는 그의 음악은 이 영화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만들어지는 장면은 당시의 음악적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이끄는 화자인 살리에리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죄의식으로 번민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가상의 설정이다.

당시 모차르트의 혁신적이고 천재적인 음악에 대한 질시를 함축해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러한 저항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적 완성을 막을 수 없었음도 말해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비중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다. 그의 천재성이 없었다면 살리에리도 없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란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란 진보적 관점이다.

당시 황제를 비롯한 봉건제 상층부의 저항 뿐 아니라 그 때문에 사랑도 받게 되는 이중성이 묘사됐는데 천재성이 가지는 비범함이 어떻게 한 사회에 녹아드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사회에 새로운 예술적 조류가 받아들여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나 식자층을 비롯한 기존 기득권층의 검증과 비평을 받으며 성장한다.

사상과 의식의 흐름은 이보다 더 강한 도전을 받는다. 영화 속 살리에리의 존재는 이같은 부류를 대변하는 화신이다.

되려 살리에리는 그를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 결국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받아들이는 – 존재로 묘사된다.

이 시대도 어쩌면 수많은 살리에리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 새로운 조류와 가치에 대한 수긍이란 역사 속에서나 지금 현재적 관점에서나 의미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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