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나는 영화로 관객과 호흡하고 싶다”

▲ 장편 데뷔작 ‘잔칫날’로 4관왕, 배우 출신 감독 김록경
[부천=광교신문]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지난달 9일 개막, 16일에 막을 내렸다.

한국영화 탄생 101년째를 맞은 올해 BIFAN은 ‘장르의 재능을 증폭시켜 세계와 만나게 하라’는 새로운 미션을 수행했다.

BIFAN을 통해 장르영화의 재능들을 보여 준 ‘경쟁’ 부문 수상작 및 ‘괴담 단편 제작지원 공모전’ 당선작의 감독·배우들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시상식 때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식에서 ‘잔칫날’이 말 그대로 ‘잔칫날’을 맞았다.

‘잔칫날’은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경쟁부문에서 작품상·배우상·배급지원상·관객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관객상-배급지원상-배우상에 이어 작품상을 수상하자 김록경 감독과 ‘잔칫날’ 팀은 무대로 나와 최고의 기쁨을 누렸다.

김록경 감독은 2004년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돌려차기’ ‘사생결단’ ‘파수꾼’ ‘황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감독 데뷔는 2016년 단편 ‘연기의 힘’으로 했고 이어 ‘성재씨’ ‘꽃’ ‘사택망처’ 등을 연출했다.

‘잔칫날’은 이에 이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잔칫날’ 외 ‘사택망처’는 올해 BIFAN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4관왕 수상을 축하드린다. 시상식 때 못다 한 소감이 있다면?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린다. 시상식 때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시대에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큰 상까지 주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스태프·배우 모두가 함께 해줘서 가능했고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모든 팀과 자원활동가, 관객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장편 데뷔작이다. 4관왕까지 예상했나?

“아니다,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경쟁작으로 초청된 것도 실로 기뻤는데, 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였다. 쟁쟁한 감독님들도 많이 계셨고 4관왕은 아직도 꿈만 같다”

관객상·배급지원상·배우상·작품상 중 어떤 상이 가장 기뻤나?

“다른 상도 정말 감사하고 기뻤지만, 작품상이 가장 기뻤다. 작품상은 최고상이지 않나 관객상·배급지원상·배우상을 받고 ‘이제 됐다… 이 정도 했으면 됐어…”고 생각하는데 작품상에 제 작품이 호명돼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첫 번째로 발표한 ‘관객상’은 홍이연정 피디님이 ‘작품상’보다 더 바랐던 상이었다”

제24회 BIFAN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에는 13편이 초청받았다.

‘성형수’ ‘잔칫날’ ‘귀신’ ‘고백’ ‘헝거’ ‘인천스텔라’ ‘태백권’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 ‘좀비크러쉬: 헤이리’ ‘손’ ‘구직자들’ ‘보이스 비’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등이다.

심사는 엄혜정 장건재 피어스 콘란이 맡았다.

장건재 위원은 “13편의 한국영화를 통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장르영화라는 프리즘으로 통과시켜 만들어낸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며 “그 중에서도 삶의 비애와 아이러니를 유쾌하면서도 성숙한 시선으로 담아낸 ‘잔칫날’에 작품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잔칫날’의 작업기가 궁금하다. ‘잔칫날’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단편 ‘사택망처’ 작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다. 친구와 신나는 음악을 듣다가 ‘잔칫날’의 ‘경만’이 할머니 팔순 잔치 행사하는 이미지가 그려졌고 돈을 받기 위해 할머니를 웃겨야 하는 상황이 떠올랐다. 그날 바로 노트에 메모를 하다가 경만이 왜 돈이 필요한지 이유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노트를 덮어뒀다. 그러다 ‘나한테 돈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고 8년 전에 치른 아버지 장례식장이 생각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돈이 필요하더라. 돈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가까이 밀착해 있고 많은 걸 결정하게 하며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잔칫날’에서 만큼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은 ‘잔칫날’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리고 싶었다. 이러한 고민들을 정리하며 시나리오 초고를 썼는데, 정확히 2주 걸렸다”

시상식 때 홍이연정 피디가 눈물을 많이 흘렸다.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제작지원을 받아 피디를 찾던 중에 홍이연정 피디님을 만났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함께 하고 싶었던 정성욱 촬영감독님도 기꺼이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스태프와 배우 한 분, 한 분을 만나가며 준비과정을 거쳐 촬영을 시작했다. 스태프와 배우분들을 포함해 그날 음악을 함께 들었던 친구와의 대화, 8년 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잔칫날’은 없었을 거다”

무명 MC 경만은 각종 행사 일을 하며 동생 경미와 함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간호 중이다. 아버지 상태가 좋아지면 세 식구가 함께 다시 한번 낚시를 가자 약속했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가족의 소박한 꿈도 사라진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경만이 마주한 것은 장례비용조차 없는 빡빡한 현실.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미 몰래 지방으로 생신 축하연 행사를 가지만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소동에 휘말린다. 영화 ‘잔칫날’은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오빠와 영문도 모른 채 홀로 장례식장을 지켜야 하는 동생을 통해 모두에게 똑같지만은 않은 삶의 무게와 고단함, 그럼에도 작은 이해와 희망 속에 계속되어야 할 삶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하준 배우가 ‘배우상’을 수상했다. 현장에서의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하준 배우는 프로필을 보고 오디션을 통해 만났다. 하준 배우가 가진 눈빛이 좋았다. 슬퍼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지 않으려 하는 듯한 눈빛이 있다. 그게 강하게 절 끌어당겼다. 그리고 ‘경미’ 역의 소주연 배우는 감정 이입하는 속도가 엄청 빠르고 집중력이 아주 좋았다. 극 중에서 많이 울고 힘든 역할이다. 하지만 제 눈에 ‘배우 소주연은 즐겁고 경미는 아팠다’ 그렇게 느껴졌다. 청년회장의 오치운, 일식의 정인기 선배님, 잔칫날의 모든 배우들와의 작업이 즐거웠다. 정말 캐스팅을 잘했다”

영화 찍으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아무래도… 적은 예산과 시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포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 돈이다. 그래도 영화에서도 말하지만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또 다시 느낀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고 관객분들이 많이 우시는 걸 봤다. 영화를 찍으면서 또 후반작업을 하면서 영화가 관객분들과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부천에서 관객분들의 반응을 보고 영화를 만든 보람을 느꼈다”

‘파수꾼’ ‘황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의 영화에서 배우로 출연했다. 연기 경험이 연출에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많은 도움이 됐다. 배우들의 심리 상태도 그렇고 연기할 때 작은 습관, 호흡들까지…. 가장 도움이 많이 된 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분명한 이유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구상 중인 차기작은?

“‘잔칫날’ 이후에 두 편의 이야기를 썼고 지금 또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구상 중인 작품이 세 편 더 있다. 한 편은 가정폭력 속에 자란 인물이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만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 편은 스릴러 장르다. 요즘 쓰고 있는 건 코미디인데, 작은 선거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을 찾아가는 ‘오키나와’라는 멜로드라마와 2080년 배경의 SF영화 등도 구상하고 있다. 부지런히 작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장르를 가르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보이는, 사람 냄새 나는 영화다. 영화는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이지 않나. 내가 보는 세상에서 상상하며 사람 냄새 나는 솔직한 이야기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잔칫날’은 개봉 계획은?

“아직 개봉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심히 개봉시기를 잡으려고 한다.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이 ‘잔칫날’과 함께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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