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헌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얼마 전 TV를 통해 이세돌 9단이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 4패로 패배하면서 은퇴를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사실 이길 줄 알고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고 방송에서 밝혔고 패배 후 ‘절대 이길 수 없어 암담했다.’고 소감을 이야기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AI의 발전이 인간을 뛰어넘었음을 알렸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클래식 음악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논할 때 주로 예술의 고유한 ‘창의성’과 ‘감정’에 대해 논하곤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바둑처럼 승패가 나뉘는 분야도, 점수를 매기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아직까지는 알파고가 음악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몇년 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근데 요즘 입시에서는 변별력 있는 평가를 위해 미스가 안나는 것도 중요한데요?’ 씁쓸한 이야기지만 그들에겐 틀린 말이 아니다. 가끔 어느 집단에서는 전적으로 ‘미스가 나지 않는 연주’를 바라기도 하고 그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줄 때가 있다. 경쟁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심사위원들의 고충도 이해가 되지만, 이러한 기준을 가진 사회가 늘어날수록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아직 알파고, AI는 클래식 음악을 대체할 수 없다고 평가되는가? 악보에 있는 음표를 그대로 ‘발생’시키는 데에는 사실 큰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고로 로봇은 인간보다 음정을 있는 그대로 내는 데에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테크닉이란, 음악을 표현함에 있어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로봇의 연주를 들었을 때, 사람의 연주보다 확실히 별로라고 느끼는 이유는 테크닉을 통한 미스의 유무가 아닌 그 음을 통해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은 악보로부터 시작되어 연주자의 심장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사람들은 음의 나열을 통해 음악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세돌 9단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직 로봇이 음악은 안되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보면 언젠가 더욱 발전된 로봇이 나타나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알파고가 음악을 대체하는 분야는 충분히 생길 수 있지만 대체가 아닌 ‘교체’ 되도록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4년 전, 이세돌의 패배는 AI가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생을 다할 때까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쫓다 끝내 알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지만 그 과정조차 망각할 때가 참 많다. 음악은 ‘결과’보다 ‘과정’의 예술이지 않은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끝나는 음이 무엇인가.’가 아니듯 우리는 ‘끝’이 아닌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쫓을 필요가 있다. 예술 분야에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로봇이 아닌 인간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불완전에서 오는 인간의 미덕 때문 아닐까.

- R.Schumann : Träumer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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