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헌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클래식기타’하면 떠오르는 곡 하면 ‘로망스’와 함께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이다. 약 1년 반전 현빈과 박신혜 주연 드라마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바로 그 이름으로 클래식 라디오를 통해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아주 스테디한 작품 중 하나다. 오늘 칼럼에선 이 작품의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 (Francisco Tarrega)에 대해,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대해 기타 연주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Francisco Tarrega (1852-1909, Spain)-
-Francisco Tarrega (1852-1909, Spain)-

 

‘기타계의 사라사테’, ‘근대 기타의 아버지’라 불리는 타레가는 19세기 후반 스페인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곧이어 20세기에 자리잡을 현대적인 기타 주법들을 완성한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뛰어난 테크닉과 낭만적인 연주 스타일로 스페인의 동시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와 비교되곤 했다. 그는 고전, 낭만시대에 걸쳐 암흑기에 빠져 있던 기타라는 악기를 통해 대중에게 큰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음악계에 기타 독주의 가능성을 새롭게 대두시켰다. 또 기타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당시 유행하던 큰 홀이 아닌 작은 공간에서 갖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하우스콘서트’와 같은 연주를 즐겨 가지면서 애호가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에 큰 성과를 냈으며 이로써 음량이 큰 악기들 사이에서 기타가 어떤 매력으로 살아남을지에 대해 좋은 방향을 제시했다.

또 작곡가로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베토벤과 쇼팽, 멘델스존, 바하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편곡해 남겼고 이전보다 더 어렵고 세밀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테크닉을 위한 연습곡을 다수 작곡했다. 작품에선 당시 지배적이었던 낭만주의적인 경향과 스페인 민족주의 요소가 결합된 타레가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덕분에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타레가의 작품을 낭만으로 분류할지 근대로 분류할지 종종 고민에 빠지곤 한다. 이야기 나온 김에 짧게 다루어 보자면 작곡가의 시대 분류는 정해진 년도로 딱 나뉘어 떨어지는 부분이 아니어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루어진 책이나 논문이 많은 대작곡가들은 흔히 통용되는 시대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기타 작곡가들은 이를 명쾌하게 서술한 자료가 적은 편이다. 특히 낭만 후기로 접어들어서는 분류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며 이 시기를 일컫어 ‘근대’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가까운 시대’를 뜻하는 단어로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 이전의 시대를 ‘근대’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F.Tarrega – Preludes]

나는 타레가의 많은 기타 레퍼토리 중에 특히 전주곡 시리즈를 좋아한다. 피아노에 쇼팽의 전주곡 시리즈가 있다면 기타에는 타레가의 전주곡 시리즈가 있다. 서정적이고 애수 어린 작품들이 참 많다. 마치 ‘시’처럼 굉장히 짧은 곡들이 많은데 이 점도 아주 마음에 든다. 곡은 짧고 여운은 길다. 요즘에도 독주회 프로그램을 짜면 잘 어울리는 3~5개의 전주곡을 묶어 한 곡처럼 즐겨 연주하곤 한다.

연주하기 가장 껄끄러운 곡을 꼽으라면 칼럼 제목에 적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꼽을 것 같다. ‘왜 그 좋은 곡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바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스테디한 곡은 실제 무대에서 연주하기 참 부담스러운 법이다. 트레몰로 주법이라는 것이 평소에 늘 사용하는 주법도 아니라 별도의 연습이 필요하고 안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여간 까다로운 주법이 아니다. 게다가 곡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는 굉장히 높고 애호가분들 중에는 한평생 이 곡만 연주한 분들도 계실 정도라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평소 ‘로망스’와 더불어 누군가 기타 한 번 연주해달라고 하시면 가장 많이 요청되는 레퍼토리로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사실 마음속엔 불이 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곡이 연주될 때만큼 사람들 눈이 반짝일 때가 없다. 객석이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해지며 마치 성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로 고요하다. 명곡의 힘이 이런 것 아닐까 싶다.

[David Russell – Recuerdos de la Alhambra]

-Alhambra-
-Alhambra-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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