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헌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연주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면 쉽게 두 분류로 나뉘는 공연들을 볼 수 있다. 진지하고 학구적인 프로그램을 가진 전공자, 애호가들을 위한 공연, ‘쉽게 듣는’, ‘해설과 함께 하는’ 이라는 문구가 붙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공연이다. 전자는 이미 클래식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상대적으로 일반인을 겨냥해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할 때 '대중성‘이라는 키워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오프라인 연주의 대부분이 멈춰 있어 온라인을 통한 ’무관중 라이브 스트리밍‘ 콘서트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의 특성상,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거나 관객과 연주자 간의 호흡이 힘들기에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청중이 듣기에 편한 피스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며 더 많은 시청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방송이 잘 노출될 수 있는 플랫폼을 갖고 있는가?‘ 또한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방송이 잘 노출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은 물론 인지도나 연주의 퀄리티가 월등히 좋아서 사람들이 직접 찾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대중성‘을 띈 홍보나 그에 걸 맞는 연주자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클래식 장르는 유독 ’방송에 자주 나오는 연주자‘와 ’좋은 연주자‘가 다르다고 평가되는 장르 중 하나이다. 물론 클래식 애호가나 전공자들에겐 후자가 좋은 평가를 받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방송에 자주 나오는 연주자’를 알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위에 이야기한 ‘좋은 연주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쉽고 편하게 클래식 음악을 전파할 수 있다면 좋은 연주자 아닌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좋은 음악은 다른가? 참 어려운 이야기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알려진 연주자’와 ‘좋은 연주자’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에도 참 아이러니하고 미안할 때가 있다. 사실 연주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악기를 통해 표현하는 사람일 뿐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맞는 표현일까 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실력으로 매겨진 등급, 그것에 의한 감상은 아름다운가. 

반대로 대중들이 보기에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꼭 대중적인 것을 취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결국에 특정 사회에서 만들어낸 지극히 상대적인 단어다. 우리가 좋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회에 ‘그건 좋지 않아!’ 이야기 하는 것도 어쩌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다.

-N.Paganini Cantabile-

또 다시 돌아와 ‘클래식 음악은 대중화될 수 있는가?’, 대답 없는 질문으로 남기는 것이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되나 제목으로 관심을 끈만큼 꼭 대답해야 한다면 ‘클래식 음악이 꼭 대중화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원래의 모양 그대로 대중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람들이 하트 모양을 좋아한다고 해서 삐죽삐죽한 클래식을 하트 모양으로 깎을 필요는 없다. 대중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클래식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클래식도 대중음악을 강요받아선 안 된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좋아하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어쩌면 가장 좋은 ‘대중화’ 아닐까.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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