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헌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기타리스트, 기타 전공자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레퍼토리 발굴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 우리가 흔히 칭하는 대작곡가들의 부재로 ‘막연한 레퍼토리’가 비교적 적기 때문이며 실제로 유명한 기타음악 작곡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편곡한 케이스도 적지 않게 있다. ‘자주 연주된다.’라고 수식되는 곡들의 범위가 넓고 비교적 길이는 짧아 오랜 연주자도 다른 사람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펼쳐보았을 때 생판 모르는 작품을 마주할 때가 자주 있다. 또 기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레퍼토리 중 스페인 혹은 스페인어권 음악이 비교적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와 다양한 국적의 작곡가들이 기타 작품을 남겼지만 이전의 기타음악은 스페인어권 음악과 아닌 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비교적 독일어권, 프랑스 음악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하며 연주자들은 그 챕터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늘 노력 중에 있다. 오늘 소개할 작곡가 또한 보기 드문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이다.

 

나폴레옹 코스테
나폴레옹 코스테

 

나폴레옹 코스테(Napoleon Coste, 1805-1883)는 프랑스 Amondans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타연주가였던 어머니에게 처음 기타를 배웠고 이후 어린 나이에 기타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1829년, 24세에 파리로 이주한 그는 고전시대 기타음악의 대가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 1778-1839)를 만나 그의 밑에서 사사받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로 급부상했지만 당시 기타계는 암흑기를 맞고 있었다. 연주의 대형화, 악기의 개량등이 급물살을 타면서 소리가 작은 기타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작곡한 많은 악보들을 출판하기 위해 직접 자금을 대야만 했다. 이 때, 재밌는 일화로 코스테는 기타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약해지는 이유가 당시 낭만 시대의 상징과 같았던 ‘피아노’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피아노의 폭발적인 파워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유럽을 뒤덮고 있는 피아노 열풍에 대해 ‘전염병’에 비유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모든 집에서 이 지독한 악기가 지하실에서 다락방까지 쾅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행히 내가 사는 건물엔 세 대의 피아노뿐이고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종종 이웃집을 넘어 들려올 때도 있다.”

그는 50여개의 기타 작품을 남겼으며 동시대 레곤디(Giulio Regondi, 1823-1872)의 작품과 더불어 가장 자주 연주되는 낭만시대 레퍼토리에 속한다. 그의 작품중 Op.31 ‘Le Depart’ Fantsie Dramatique와 Op.38 ‘25 Etudes’, Op.44 ‘Andante et Polonaise’등이 현대에 자주 연주 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스승 페르난도 소르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고전시대와 비교해 긴 멜로디, 급진적인 장면 전환 등 낭만시대의 특징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Fantasie Dramatique ‘Le Depart’ Op.31

 

[작품 이야기] 위의 영상은 재작년 Korea International Guitar Festival Competiton 중 본선 무대 실황이다. ‘Le départ’는 프랑스어로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Introduction과 Marche,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시작을 알리며 넓게 펼쳐지는 E코드 그리고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아름답고 긴 아르페지오 파트를 지나 군대 나팔소리를 연상케 하는 8도 진행으로 꿈속에서 깨어난다. 이후 나오는 행진 파트 악보에는 프랑스어로 ‘Le Retour’(귀환), ‘Marche Triomphale’(승리의 행진)이라는 문구가 서체로 적혀져 있는데, 이로써 이 작품이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판타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며 또 바로 옆에 ‘1855, 12월 29일!...’이라고 적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오스만투르크, 사르디니아 연합군이 벌인 ‘크림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예측해볼 수 있다. 참전 중인 군인을 화자로 둔다면 좋은 몰입과 해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pisode du siège de Sébastopol pendant la guerre de Crimée en 1855

 

1855년 크리메 전쟁 동안의 세바스토폴 공격
1855년 크리메 전쟁 동안의 세바스토폴 공격

앞서 Introduction의 밝은 E Major에서 e minor로 전조 되며 장엄하고 위풍당당한 행진,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 G Major 파트를 지나 앞서 나온 행진곡 테마를 아르페지오로 펼쳐놓은 느리고 서정적인 바레이션 파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면 꼭 한 번씩은 등장하는 '회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짧은 회상 이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 행진을 이어가며 코다 파트로 진입해 3도 + 베이스 진행으로 급진적인 분위기를 이어간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 끝에 마지막 페이지, 장조로 짧게 등장하는 영롱한 ‘a tempo’ 파트로 마지막 ‘회상’을 맞는다. 이후 강렬하게 내리꽂는 e minor 스케일을 통해 곡은 마지막으로 접어들며 장렬하게 종지를 맺는다.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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